김희건목사

eca2efab30f2f9e7c565dac93d5f612b_1738365298_4106.jpg
 

타산지석

작성자 정보

  • 김희건 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한자 숙어 타산지석이란 소인의 행동을 거울 삶아 자기를 바로 세우는 수단을 삼는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들의 본이 되지 못한 행실을 보면서, 저렇게 살면 안되지 하는 자기 교훈을 삼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타산지석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공통적으로 목사, 신학교 교수였다. 군대 생활을 할 때 군종 사병으로 근무하다가 제대했다. 그때 군종장교로 있었던 사람은, 그 키가 내 어깨에 닿는 작은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군종장교란 군대의 목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을 몹시 함부로 대했다. 나는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뒤늦게 군대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군대 사무실로 들어오면 처음 하는 일이 워커(군인 신발)을 내 코 앞에 내미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인분을 밟고 와서 그것도 닦아 주어야 했다. 군대 생활이라지만, 부하에 대한 배려가 없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제대후 신학교에 들어가려던 생각이 그 사람을 인해 한참 미뤄야 했다. 그런 사람과 동종으로 엮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 잠시 회사 생활을 하다 마침내 신학교에 들어왔을 때, 강의실에 들어가서 느낀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무슨 신학교 교수가 그 비싼 워커힐 아파트 두체를 하나로 만들어 산단 말인가? 청빈의 삶을 믿었던 나에게 그 교수의 호사한 생활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분의 강의 중 학생들에 대한 무시의 말이 쉽게 흘러 나왔다. 교화샹활 목회생활에 대한 도움이 되지 얺는 신헉 강의인지라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되지 않았다. 그 신학교 들어간 것을 후회해서 다른 신학교로 옮길 생각을 하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그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무시하는 교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미국애 와서 목회 생활을 하면서 한 교회 건물을 같이 사용하면서, 남미 출신의 평신도 목회자를 상대해야 했다. 이 사람은 평신도이지만 미국 장로교단의 허락을 받아 교회 목사의 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같은 교회 건물을 사용하면서 그 사람 부부를 상대하면서 나와 우리 교인들이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그 까닭은 교회 지도자로 자기 유익을 구하고 돈을 요구하기 때문이요, 심지어 변호사를 사칭하여 거짓 편지를 우리 교회에 발송하기도 했다. 목회자의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변호사를 사칭한 거짓 편지를 보낸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라면,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인종에 따라 사람들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저지에서 학교 운영에 함께 종사하면서, 법적으로 미비된 상태에서 학교를 운영해 왔음이 드러났다. 나는 우선 법적으로 인정을 받는 학교로 세울 것을 주장했지만, 다른 파트너는 아무 문제없다고 우겼다. 나는 당국에서 요구하는 시한에 사퇴하고 물러났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불의와 거짓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눈 앞의 이익보다, 바로 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조건을 요구한다. 디모데 전서 3장에서 감독의 조건을 읽다 보면 그 많은 조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하고(몰래 딴 짓하지 말라는 것 포함),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어야 하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교회가 쉽게 흔들리고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지도자를 얻지 못한 까닭 아닐까? 항상 경성하여 바르게 살려는 의지와 기도가 없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인간임을 아는 것이 지혜라 생각한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5 / 1 페이지
번호
제 목
이름



최신글 모음


새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