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의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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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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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택하고 행함에 있어 인간의 의지가 자유한가, 아니면, 죄의 지배 속에 살고 있는가, 하는 주제는 종교 개혁 시대 중요한 논쟁 거리였다. 에라스무스라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어, 회개하고 믿는 일이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주장한 반면, 루터는 인간의 의지는 죄에 얽매이고 구속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의를 선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 의지나 예정론은 같은 기독교 세계에서도 쉽게 화합하지 못하는 주제이다. 자유 의지를 주장하는 감리교 신학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있어 사람이 하나님을 듣고 응답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점에서 장로교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장로교 신자여서라기 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아니면, 돌이킬 수도 없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이런 믿음은 인간 본성의 악함이 생각보다 깊고 크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사납고, 악하다는 것이 사람에 대해 갖는 생각이다. 로마서 3장 11절 이하를 읽으면,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늘 새벽 이런 주제가 생각나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재판하는 이때, 헌법 재판소의 일부 좌경화된 판사들이 올바른 재판을 할까, 질문이 들어와서이다. 이들은 생각보다 좌경화된 사람이고, 야당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부패성을 생각할 때,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양심과 법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 진영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대한민국 불행의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힘의 논리이다. 자기들보다 훨씬 강한 자가 나타나면 이들은 머리를 숙이게 될 것이다. 막강한 야당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지금 대한 민국에서 국민들, 대학생들이 깨어나서 양심과 법에 따른 올바른 재판을 요구하고 있고, 사회의 지성인들 100인이 일어나 현재 헌재 재판의 불의와 불법을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양식과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뭉쳐 올바른 재판을 요구할 때, 이 양심없는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혹 돌이키지 않을까, 한 가닥 소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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