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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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의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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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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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양심과 의지가 자유한가, 제대로 기능하는가의 문제는 초대 교회부터 중요한 논쟁의 이유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은 태어날 때, 죄없는 순수한 양심과 의지로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은 사람의 본래의 심성이 몹시 부태하고 타락한 상태로 태어났음을 주장하였고, 그 주장이 교회 역사 속에서 정론으로 받아 들여졌다.
이런 논쟁이 종교 개혁 시대에서 루터와 에라스무스 사이에 다시 재연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사람이 타락하였지만, 그래도 자유 의지를 구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루터는 사람의 의지의 자유란 허구적인 언어라 하고, 사람의 본성은 죄의 종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당시 칼빈도 사람의 본성이 타락하여 자유하지 못함을 주장하였다.
사람의 본성, 의지나 양심에 대한 이런 논쟁은 그후헤도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논쟁이 되었고, 그 신학의 중심에는 이런 사람의 본성에 대한 기본 교리가 깔려 있다. 복음 주의 신학의 저변에는 사람의 타락의 실상에 대한 강조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의지를 바로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을 수용하는가에 따라 신자는 자신의 신앙의 특징을 갖게 된다. 나같은 경우는 사람의 철저한 타락을 믿는다. 하나님 앞에 내 모습이 어떠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기억이 나로 하여금, 사람의 철저한 타락을 믿게 하고,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묘사(롬 3: 10-19)는 사람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된다.
목회 생활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사납고, 낮아질 수 있는가를 경험했던 것도 사람을 이해하는 안목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일찌기 한국 신대원 강의실에서 고명하신 목사님은 자기 교인들의 정신 연령을 17살로 이해한다고 가르쳤다. 박사들, 장관들, 변호사들이 즐비한 그 교회에서 교인들의 정신 연령이 그렇다는 것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자기 자신을 조용히 성찰할 수 있는 신자라면, 이런 인간 이해에 침묵하고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참 모습을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겉으로는 의롭고 양심적인 것 같아도, 속 마음이나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살았는지는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런 자신에 대핸 진실한 고백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 내지 위선적인 삶을 살 것이다. 정신 분석학자 칼 융의 설명에 의하면, 세상에서 양심적인 직업을 갖는 사람들, 목사나 교사나 판사들이 뒤에서 더 음침한 삶을 산다고 한다. 겉으로 내세우는 삶과 인간 본성의 불의한 성품이 균형을 취하기 때문이라 한다. 겉으로 양심적, 교육적 삶을 주장하는 사람이 뒤에서 더 많은 어둠의 충동을 겪는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살았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소위 성지자들이 뒤에서 그렇게 살았다. 오늘날 교회 세계의 지도자의 이름을 가진 사람도 경건의 훈련을 소홀히 하는 자들은 은밀한 가운데 어둠의 행실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지, 본성은 똑같다. 탐욕의 본성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르게 알고, 날마다 말씀과 성령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본성을 극복하고 의와 진실 안에 살고, 하나님의 가까운 임재를 체험하며 살게 된다. 이런 장치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그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과 탐욕 속에 사는 것 같다. 자기 실상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일찌기 테스 형이 한 말: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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