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맨 마지막에 기록된 말씀이 바로 "마라나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다. 이 말이 초대 교회 성도들이 만날 때의 인사말이었다고 한다. 우리 신자들도 이 말을 인사로 주고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는 마음만큼 순수한 마음이 또 있을까?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혼돈 그 자체인 것 같다. 불의와 악이 제어되지 않고,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자기 뜻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국제 사회는 점점 더 깊은 갈등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전쟁과 갈등의 소식을 끊임없이 듣는다. 한국이나 국제 사회의 경제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경고를 계속 듣고 있다.
거리에는 정신 줄을 놓고 사는 사람들이 흉기로 무차별적 폭행을 일삼는다. 무언가 사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그렇게 표출하는 건가? 사회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공의가 바로 서야 하고, 불의와 악은 제어받고 유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소식은 그렇지 않다. 멀리서 듣고 보는 뉴스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만일 국제 사회 질서를 지키는데 앞장 섰던 미국이 그 역할을 포기하면, 어떤 세계 상황이 연출될까? 벌써부터 불안을 느끼게 된다. 약소국을 방치않고, 지지하고 도움으로 큰 나라가 자기 소욕대로 처신하지 못하지 않은가? 우리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렇게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살고 있을까?
그러나 세계는 점점 와해되어 가는 느낌을 받고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어느 나라에 살던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야 사람들이 서로 여유롭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화평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여건이 나빠지면서, 사람들의 인심이 점점 흉악해 져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말세에 사람들이 초급하고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말세의 삶의 여건이 몹시 힘든 것과 연관이 있다.
일찌기 주님은 주 기도을 가르쳐 주셨고, 그 기도의 끝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나이다"였다. 이 기도를 드릴 때,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 조상이 에덴을 떠난 후, 사람 중심의 나라와 통치를 이루려 했지만, 어느 왕도 권력자도 이 세상에 질서와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이런 삶은 역사의 끝에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책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이제 사람들의 통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하늘의 하나님이 다스려 주기를 소원하는 기도이다. "아버지께 나라가 영원히 있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만 진정 통치하실 수 있다는 고백이다. 그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고 그 통치 속에 살고 싶어 하는 념원이 들어 있는 기도문이다.
다행히도 겉으로 보이는 이 세계의 혼란 뒤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계신다. 그가 이 역사를 다스리고, 상 줄 자를 상주시고, 벌할 자를 벌하신다. 그것이 요한 계시록 속의 줄기찬 메시지이다. 눈에 보이는 불의와, 불의가 가져오는 고통과 답답함을 보면서, 마음으로 원하는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주님, 어서 오셔서 다스려 주소서."
그러나 그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도, 지금도 주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과 걸음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기에 잠잠히 그를 바라 본다. 내 머리털을 다 헤아리시고, 내게 관한 작은 일도 그 섭리 속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시6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