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설교에서나, 쓰는 글 속에는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하게 살자는 내용을 계속 담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특히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실이 진실하지 않으면 무슨 전도나 설교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사도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의 배경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선교 현장에서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갖혔을 때, 밤 중에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그때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게 되었다. 놀란 간수가 와서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 줄 알고, 책임이 두려워 자결하려 했을 때, 사도 바울은 큰 소리로, 너의 목숨을 해치지 말라, 우리가 여기 있노라, 말하였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감옥 문이 열리면 도피했을 텐데, 사도 바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만일 자리를 피하면, 간수가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억울한 누명을 쓰고 , 감옥에 갖혔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사도 바울 앞에 이 간수가 엎드려, 선생들아,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오? 물었던 것이다 간수가 죄수 앞에 엎드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간수가 바울 일행을 가리켜, 선생들이라고 불렀던 그 말은 주님들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주라고 부르지 말고, 예수를 주로 믿으라고 권했던 것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에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고 전하는 말은 허망한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도가 빈 소리로 돌아오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말과 행실이 거짓되고서야 우리가 무슨 말로 전하고 선교한들, 사람들이 믿고 따르겠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의 문제는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존경 받지 못한다는 거기에 있음을 알자는 것이다. 물질을 탐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려는 교회 안의 지도자들의 행태를 세상 사람도 혀를 차는 세대에 교회의 앞날이 있는가, 묻는 것이다. 더우기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사람의 언어 행실을 믿을 수 있는가는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같은 말을 나누고 있다.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직장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자는 것이다. 모든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게 살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쉽게 거짓말하는 못된 언행을 삼가자는 것이다. 진실은 생명을 다해 지키지 않으면 쉽게 지킬 수 없는 것을 알아, 온 마음으로 진실을 지켜 살고, 우리 입의 말이 무시 받지 않은 삶을 살기 바래 이런 글을 또 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