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안에 계신다"고 말한다(엡4: 6). 어제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이 구절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루 하루 사는 일이 거져 오고 저절로 가는 것이 아님을 말할 것이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 세상을 살고 있다. 거리의 위험, 사람의 위험, 질병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들토끼는 매에 잡혀 희생되고 있다.
지난 1월 교통 사고는 내 삶에 이런 부분의 심각함을 항상 일깨워 주고 있다. 하루 하루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사고 중에 부상없이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은헤인가, 아는 사람은 안다. 그 일 후 기도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아울러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위에 계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주관하신다는 사실이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자기 자녀들을 주야로 돌보시고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 눈이 항상 주목한다고 한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 아버지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광막한 세상 속에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우리가 공기, 산소 속에 살면서 호흡하며 생명을 보존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 우리는 그 안에서 안연히 살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지으신 만물 속에 함께 하신다는 가르침을 "만유재신론(Panentheism)이라고 부른다. 지으신 피조물 속에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거하신다는 주장이다. 감사한 일이다.
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특출했던 구약의 선진들, 사도 바울과 같은 선지자들은 그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와 즐거움의 삶을 살았다. 다윗은 내란의 혼란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주여, 주는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말하였다.
신앙 생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요,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다 떨쳐 버리고 담대함과 감사로 사는 삶이라 할 것이다. 마치 예수님이나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 오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라들은 이 세상에 침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밟고 승리의 삶으로 하나님께는 영광, 이웃 속에는 영감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런 삶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