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에 남아서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이 롬11: 36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느니라, 영광에 그에게 세세에 있으니라도, 아멘." 사도 바울은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면서 결론적으로 이 말씀을 하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혼란스럽고, 악이 제어되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 것 같고, 의로운 사람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조차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불안하게 보일 때도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의구심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막힌 가슴을 뚤어 주는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일이 하늘의 하나님,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 의해 운영되고 보존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로 다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은 특히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된다. 이 말씀과 함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고 있다.
우리도 이 말씀의 뜻을 알게 되면,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감사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몇 가지로 기술해 본다. 첫째, 우리 생명의 시작, 더 나아가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안에서 시작한다. 그 까닭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때론 알 수 없는 현실 앞에 답답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어진 것임을 밝혀 준다. 이런 말을 할 때, 우리가 감사할 이유는, 하나님은 항상 자기 백성의 선과 유익을 위해 행하시기 때문이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나이다"(시 119: 68).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들이 그의 선하심에서 기인된다. 그걸 알고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열린 마음과 함께 모든 현실을 하나님 안에서 보고 수용하는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신 뜻으로 열어 주시는 세상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고 감사하게 된다.
둘째는, 모든 일을 시작(창조)하신 하나님은 선하신 뜻 안에서 붙들고 돌보시고 보존하신다. 우리의 하루 하루 삶은 우연한 것도 아니고, 우리 행위의 결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보존되고 운영되고 있다. 오늘 하루의 평범한 삶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알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걸을 수 있는 것, 보고 듣는 것, 하루의 양식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우리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다시 하나님께로 부르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부르시는 하나님을 따라 천국으로 들어갈 소망을 갖고 산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았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구약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인해 하나님께 찬양하였다(시 107: 1). 창조자요 보존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오늘도 붙드시고 그 성실하심으로 돌보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살고 나서, 그 사실을 인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신앙 생활이란 이런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도 우리 생명과 삶을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감사와 찬송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세상이 흔들리고 요동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인도하심을 알기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게 된다. 환난 속의 성도들도 이 사실을 인해 찬양하였다: "구원하심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7: 10). 이 거친 세상에서 찬양으로 사는 백성들은 참으로 복을 받은 백성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