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신앙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은 일생 가장 감사할 일일 것이다. 박 목사님은 대면한 적이 없고, 그 설교가 담긴 책을 통해 알게 된 분이다. 남포 교회를 담임하시다가 은퇴하신 분이시다. 그 설교를 읽으면서 이 분이 성경을 얼마나 바르고 깊이 있게 보는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 수년 전, 그 설교 책을 목회학 박사 과정에서 읽고 토론한 적이 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시는 목사님의 안목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몹시 똑똑한 분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큰 교회,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그 목사님의 수준과 깊이를 알게 된다. 큰 교회를 세우고 목회한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과 성경을 깊이 알고 섬긴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전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드는 것이 교회의 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신천지 교회의 모임이 Youtube에 나와서 본 적이 있다. 수 천명이 모여 그 지도자의 강해를 듣고 있었다. 그 교회를 참 교회라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 목사님이 대단하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또다른 예로, Joel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천명이 모인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된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귀를 간지럽게 하는 설교일뿐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참 진리를 아는 데 있지 않고,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찾는 현실을 알까? 교회와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배운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무엇이 진리이고 옳은가? 그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무엇이 내게 유익한가? 그것을 찾는 것을 알고, 몹시 실망한 적이 있다. 또 어떻게 가르쳤기에 그런 제자들, 그런 교인들이 있게 되었을까, 자책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새벽 이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아, 참으로 놀라운 목사님이시다. 성경의 깊은 의미,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해 주시는 그 설교는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의 사람들,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이나 평신도나, 무엇을 좇아 가는가? 그 실상이 드러난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기 원하는가? 내 유익, 내 성취를 좇아 따라 가는가? 어떤 분은 신앙 생활을 보험에 드는 것이라 말하는 분도 있었다. 위기의 날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정성을 바치는 삶이란 뜻인가? 우리는 만사를 너무 우리 수준대로, 자기 유익의 관점에서 보고 판단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실상을 모르고 살고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이해를 갖고 살까? 독생자를 희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디까지 이해할까? 일찌기 들은 말씀에 의하면 평생을 살아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그 사랑으로 오날날까지 함께 해 주신 것을 겨우 믿을뿐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말할 때도 자기 중심적인 관점, 내가 받은 은혜와 축복의 관점에서 말하려 한다. 성부의 고통과 희생의 사랑, 성자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겸손히, 조용히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 우리를 위해 대신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피흘리는 고통 속에서도 침묵하시고, 조용히 우리를 지켜 보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생각한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성공과 형통과 영광을 찾는 우리를 위해 고통 속에 죽어가시는 주님과 그의 기도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 생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구하며 살아야 할까? 무엇 보다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고, 그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 하나님을 품고, 그와 더불어 일생을 동행하며 살기원한다. 이런 삶도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가능하기에, 성령의 충만한 임재와 도움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 눈을 밝혀 주시고, 하나님의 참 자녀의 형상으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기쁨과 뜻을 구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