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으로 기억된다. 미국장로교(PCUSA) 소속 한인 목회자들의 연례 모임 중이었다. Chicago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40대 초반의 목사가 회의 중에 일어나 목사님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질문했다: "사람이 변화됩니까?
나는 그 질문 속에서 이 젊은 목사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읽었다. 사회자는 대수롭지 얺게 생각하고 지나가려 했다. 마침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이 질문의 심각성을 알리고 더 의논할 것을 제안하고, 이런 말, 저런 말이 오고 갔다. 별 기억할 말이 없었던 것 같다.
20년이 지나서도 그 젊은 목회자의 아픈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동병상련아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얘기를 듣고, 나누고자 했을까? 또 그만큼 오래 전에 한국에서 존경받던 목사님이 뉴욕에 와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자기 목회에 대한 소감을 말씀하면서 했던 말씀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처음 기적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변화에 있음을 선포해 주신 것이다. 물론 절대 순종을 통해서다. 그런 변화를 가르치는 것이 목회자의 사역이다. 그러면서 절망하는 것은 이 변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아다. 십여년 동안 새벽기도, 수요예배, 주일예배, 주간 성경공부로 줄기차게 가르쳤다.
그러면서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계속 보는 것이다. 바라기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가르침, 목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사람은 바뀌는 것일까? 아니면 더 나빠지는 것을 지연시켜 주는 것일까?
이런 현상은 이민 교회 안에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 말 그대로 "이동하는 사람'이다.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배움이란 꾸준히, 인내로 배워야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은가?. 쉽게 이동하고 떠나버리는 사럼이 배울 수 았는 것이 무엇알까? 이런 현상은 신학교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신자든 학생이든 대부분 이들에게 관심사는 무엇이 옳으냐에 있지 않고, 무엇이 내게 유익한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눈 앞의 이익을 좇아간다. 그러나 참 변화는 더 높은 목적을 추구함으로 따라오는 것 아닌가? 하나님과 그 나라와 그 의를?
그 중에는 정말 순수하고, 신실한 분들도 있어 지금도 좋은 교제를 계속하는 분들도 있다. 사람이 변화될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변화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 아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