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세한 감각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청년의 때부터 쉽게 좌절감을 느끼며 살아 왔다. 그때 청년들의 모임에서 불렀던 찬송가는 고통으로 여겨졌다: "내게 강같은 평화..."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내 안에는 갈등과 좌절감이 살아 있는 상황 속에서 어찌 그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부를 수도 없고, 안부를 수도 없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다.
신앙 생활의 참 만족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속에서 거두는 열매이다. 하나님과 불화하고는 결코 그 영혼 속에 평안을 얻을 수 없다. 지난 날 마음 가득하게 좌절과 눌림을 경험했던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과 온전히 화목하지 않은 결과였다고 본다. 내 주장, 내 뜻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환영하고, 그 뜻에 순응하는 마음에는 위로부터 내려 오는 평안이 있음을 믿는다.
나이 들어 하는 신앙 생활은 예전과 다른 평온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 마음으로,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결정해서 갖는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삶 속에서 의와 진실의 길을 가기 원하고, 그 길에는 평화가 찾아 옴을 알게 된다.
이런 평화의 삶에도 치루어야 하는 대가가 있다. 부단히 밀려 오는 유혹과 환경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심지를 정하고, 의와 진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결단을 잃어 버려서는 안된다. 원래 육의 지배를 받던 우리 안에는 아직도 죽지 않은 육의 욕심이 살아 있어 부단히 유혹을 불러 들인다. 그런 현실 속에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시험이 더 크고 절실한 것 같다. 하루 하루 의와 진실을 지켜 살기 위해서는 영적 싸움을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내 마음을 악에 내어줄 수 없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것이 우리 신앙인 아닌가?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오직 주님 뜻대로 살기를 구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정 속에 때론 마음이 침울해 질 때가 있다. 그러할 때 나는 살전 5: 16절을 묵상한다: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삶의 조건이 어떠하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이라 한다. 생각할수록 감사할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쁨 속에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 배경과 이유에는 우리 구원의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 안에 살기 때문이다.
기쁨을 찾고, 기쁨의 삶을 살라는 뜻을 순종하여, 항상 기쁨으로 살려고 한다. 모든 우울함과 침울함을 내어 쫒아내고, 주님 안에서 기뻐할 이유를 찾고 기뻐하며 살기 원한다. 항상 기뻐하며 사는 삶처럼 귀하고 복된 삶이 어디 있을까? 그 복된 삶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이요,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 추구하며 붙잡고 살아야 할 삶의 실천이다. 기쁨의 삶도 우리의 선택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삶은 거저 오지 않고, 우리 중심의 결단과 실천을 요구한다. 물론 성령의 도움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