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 예수님에게 가장 혹독한 책망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대 백성들의 지도자 행세를 했지만, 속으로는 위선과 탐욕이 가득했다고 엄히 책망을 받았다.
자기 변화 없이 누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나 위선적인 지도자들은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기 원했고, 백성들의 지도자 행세를 하며 살았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마치시는 때, 그 위선적은 지도자들을 향해 7번 "화있을진저!" 무서운 심판을 선고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에 없는 독특한 체험이 성경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에 있다. 그것은 참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도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다.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그 자신도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에 대해 문외한이었다는 것은, 이 경험은 기독교의 몹시 신비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혈통적 유대인(형식적 종교인)과 하나님의 백성의 차이가 있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온전히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갖는 데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성과 죄에 대한 아픈 각성, 그것도 성령이 주시는 애통함이다. 심판의 두려움으로 떠는 것도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각성이고 두려움이다.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했을 때, 캄캄함이 바로 눈앞에 보여 두려워 떨었다.
그런 애통한 마음, 두려운 마음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십자가 위에는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달려 있다. 그 대속의 주님을 발견할 때, 그 마음의 모든 죄책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서와 자유와 평강을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죽고 저주 받은 경험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마르틴 루터의 말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특이한 변화를 자신 안에 갖는다. 첫째는 평소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의식한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다(롬8: 15-16). 그러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둘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갖는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곧 깨닫고 괴로와 하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삶의 목적이 달라진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한다. 무슨 보상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 싶어 한다. 넷째 성령을 모신 사람은 깨끗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성령을 모신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거칠거나 교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와 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교인 중에도, 목사 중에도, 안타깝게도, 성령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까?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나 그 뜻에 있지 않다. 자기 만족과 성취를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거짓말도 쉽게 하는 것을 본다. 거룩한 변화에는 관심없고 돈에 관심이 많다. 구원의 하나님을 마음으로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살 방도를 찾다 보니 물질에 의지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행세하면, 교인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이끌림을 받는가? 안타까운 사실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했다. 예수님 시대에는 거짓된 지도자들을 예수님이 나서서 호된 책망을 하셨지만, 오늘날 교회 안과 밖의 거짓 지도자들은 누가 책망을 할까?
정말 혼란스럽고 힘든 시대를 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은 문제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거짓과 불의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상대하고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성령의 감화와 감동, 인도하심을 구하고, 축도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가 없으면 우리도 어느새 거짓과 불법의 사람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악의 길로 갈 수 없다. 우리를 가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령의 도움 없이 산다는 것은 여전한 자기 욕망과 무지 속에 사는 것을 의미하고, 여전히 어둠 속에 비틀거리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없이 사는 사람들이 은밀히 행하는 악이 없을까? (엡4: 19). 성령없이 사는 사람은 자기 성찰이 없고,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상대방 공격하는 데 빠르다. 혼란한 세상 속에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두려운 일이지만, 불신앙의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이 자기 생각, 욕심에 끌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