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상징하는 심볼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십자가일 것이다. 이 십자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특이한 사역을 알 수 있다.
십자가는 2천년 전 로마 제국의 사형의 방법이었다. 그 처형의 끔찍함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은 십자가 처형을 받지 않았다. 반란범이나 노예들이 십자가 처형의 대상이었다. 그 처형의 극심함으로 인해 그 시대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달리셨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함으로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반란범의 죄목을 지고 달리셨다. 그러나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죄가 없는 것을 알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백성들이 그 처형을 원해서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 졌음을 나중에 깨닫고, 그 죽음의 의미를 전하는 내용이 사도행전과 서신서의 중요한 내용이다. 십자가 사건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의 메시지는 이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평생 감사와 경배의 삶을 살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요, 이런 죄의 배후에는 마귀의 미혹이 있다. 죄는 생명의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살고, 스스로를 위해 살려는 태도와 삶을 가리킨다. 그런 삶은 생명의 하나님과 분리를 가져오고 죄와 죽음, 심판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죄와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데 그런 은혜(대접)을 받을까? 다 헤아릴 수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것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그 은혜를 알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이 복된 소식을 전하며 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기독교 신자는 이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떠나 살면, 허망한 것, 기껏 자기 만족과 성취의 우상에 이끌려 살 수 밖에 없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흘리신 피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보호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십자가는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와 새 생명을 부여 받는 장소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그 백성이 모여 천상의 교제를 나누는 신령한 처소이기도 하다.
2천년 전 저주의 상징이 오히려 축복의 심볼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독특한 사역이라 할 수 있다. 무릇 하나님은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찾아가 거기서 만나 뵈야 할 것이다. 모든 허영과 자랑을 내려 놓고, 빈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품고 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