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다가 오면서 듣는 말씀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 오늘 수요 예배 김성애 목사님이 택한 본문 말씀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탄생하신 상황을 보면서 찬송한다는 것은 기이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마굿간, 말구유에 첫날을 보내야 했을까? 요셉과 마리아는 그 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 상황을 보고 아는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 찬양의 시작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다. 지극히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택하신 장소가 지극히 낮은 자리, 마굿간, 말구유였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 상황은 몹시 불행하고, 동정심을 자극할 것이다.
마굿간 말구유 탄생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여관을 차지하고 자기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몰인정함이 그 배경에 깔려있다. 만삭이 되어 해산을 금방 앞에 둔 여인에게 사람들은 얼마나 몰인정했던가!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찾아간 곳이 마굿간 말구유였다.
그런 역사적 배경에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겸손이 배어 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서 빼앗지 않고, 사람들에게 쫓겨서 마굿간 말구유까지 가신 것이다. 그런 장면을 조용히 지켜 보았던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겸손하심과,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그 마음을 본받아야 할 것 아닌가?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비굴하고, 그 뜻을 받들어 살고자 한다. 그래서 어중이 떠중이들도 높은 자리에 가 앉아 대접을 받으려 하고, 그런 의지가 좌절될 때는 얼마나 사납게 대들고, 적대감을 표시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 그것도 안타깝게도 교회 세계 안에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 보내셨다. 그런 사실을 깨닫는 자들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찬양과 경배의 마음을 우러 나오게 한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경배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이유는 다른 무엇 보다도,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겸손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겸손하신 모습으로 오셨으니 우리는 어떤 겸손으로 살고, 그를 모시고 섬겨야 할까? 생각있는 신자라면 이 질문에 대답하며 살 것이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 일찌기 성 어거스틴이 전해 준 말이다.
그 하나님이 이 땅의 누군가에 평강을 전해 주신다. "땅에는 평강"이라는 표현은 성경을 외곡하는 말이다. 모두에게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강이다. 누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자들인가? 겸손과 믿음으로 하나님을 우럴어 보는 사람, 낮은 모습으로 오신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겸손하신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때, 사람들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어린 아기보다 더 낮아진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은 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며 살기 원하는 그 사람들에 임할 것이다.
교회 세계에서 자기 지위를 높이고 큰 자 행세를 하는 자들에게 그런 평강이 임할 리 없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복음의 세계에는 어린 아이들처럼 자신을 낮추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찾고 감사와 경배로 살게 된다. 그래서 이 복음은 모든 세대, 이 겸손한 마음의 사람들에게 전해 지고 그들이 오늘도 평강을 누리고 살게 된다. 하나님은 참으로 기이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