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말씀이었다. 공중의 새를 돌보시고, 들풀도 돌보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물으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 필요를 미리 아시고, 우리 생명을 돌보아 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다. 우리의 신앙 고백에 중심이 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것이요,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신앙 고백이 세월이 지나갈수록 마음에 더 깊이 다가오는 까닭이 어디 있을까? 첫째는 세상 사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험악해 지는 데 있다. 수 십년을 살아 왔지만, 요즘처럼 사는 일이 더 힘들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 보고 듣는 미국, 한국, 세상 소식 속에는, 웃음이나 소망 대신 긴장과 마음 졸임이 뒤따른다. 거짓과 불의의 사람들이 오히려 큰 소리치고 행세하는 반면, 바르게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벌써 감옥에 갔어야 할 사람들이 선동을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며칠 전에는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팔려서 아파트로, 술집으로, 심지어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이 몰려왔다. 어찌하여 세상이 이렇게 변해 버렸을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 말씀 성경이 가까이 있는데도 기독교가 힘을 잃고, 세상이 세속화되어가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다시 기독교가 힘을 얻고, 세상 속에 복음이 능력으로 증거될 수 없을까? 복음과 함께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면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하나님과 성경으로 돌아오지않을까? 그런 기대의 마음도 생겨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을 더 깊이 배우고, 믿고 따르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할 수 있는대로 그 하나님을 더 증거하고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주일을 만나 증거하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이 증거하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말씀이었다. 2천년 로마 식민지 삶 속에서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대,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증거하면서,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것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세상이 바뀌고 변하여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오늘도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신실하심을 증거하신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오늘의 시대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사고와 재난과 질병이 그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생명을 돌보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또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로 살아 계신다는 것처럼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 신실하심으로 돌보아 주셨고, 오늘과 내일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가까이, 함께 계신다는 이 진리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의지하면서, 오직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기 원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찾고 그 통치에 나를 맡기며, 그 의로우신 뜻을 구하며 살기 원한다. 그런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는 약속도 주셨으니 감사의 마음으로 이 길을 가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