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존재의 가치는 어디 있을까? 종종 생각하는 질문이다. 이 세상은 마치 젊은 사람들의 터전처럼 보일 때, 더 진지하게 묻게 되는 질문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삶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 나가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
사람들이 어떤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이유는 그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의 부러움과 돈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대에는 무엇 보다도 많은 돈을 가진 자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선망하는 것 같다.
목회 세계에서도 어떤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고, 그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을 본다. 그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사람들이 따르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 자리를 떠나면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은퇴가 훨씬 지난 현재에도 그 자리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욕이 아닐까?
국회 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엄청난 특권이 따르기 때문이라 한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 그대로 있지만, 국회 의원은 그 자리에서 떨어지면 사람 취급도 못받는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당선되려고 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런데 교회 세계에서도 그런 현상은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왜 총회장이 되려고 몇 억을 사용할까? (30여년 전, 미국 오기 전에 5억을 사용해야 당선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요즘 시세는 잘 모른다) 교인들이 헌금으로 바친 돈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치 자금으로 사용되는 일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제도가 개선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심리는 자기 마음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텅 빈 마음을 그런 자리에 앉음으로 보상하려는 심사가 아닐까? 옛날 어떤 분과 논문 상담을 하다가, 어떤 과목을 들을 때는 그 강사의 텅빈 것이 느껴져서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오래 남는 말이었다. 그의 화려한 언사 속에 항상 텅빈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 속에서 존재의 이유나 자존감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채우려는 것 같다.
사람의 존재의 가치, 자기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속에 참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 속에 진정한 채움이 있도록 지으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신학자에게서 읽은 내용을 나 자신도 믿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 삶의 모범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셨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늘의 지위를 내려 놓고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서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 기뻐하시는 삶을 사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 "나를 따르라." 히셨다.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찾으라는 것이다.
신앙 생활은 이 예수님이 앞서 가신 길을 따라 사는 것이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그 뜻을 이루며 사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삶은 이 세상에서 심령의 자유를 안겨 주고,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빛나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제공해 준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이 신앙의 길을 가고 있을까?
종교 개혁자들이 주창했던 모토는 "Let God be God"이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모시고 믿고 따르는 삶이 피조물 인간의 삶의 길, 생명의 길임을 증거해 주었다. 오늘날 물질 문명, 개인 주의, 자기 성취를 목적으로 삼는 세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원래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자기 존재의 의미, 삶의 가치를 가장 높이 드러내는 삶이라 믿는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는 이 세대에 삶의 참 의미와 가치를 찾아 살아 갔으면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조주요, 구원자요, 심판자 앞에 서서 자기 삶을 한 사람, 한 사람 고하는 날이 있다고 한다(롬 14: 12, 고후 5: 10, 벧전 4: 5). 그 날을 의식하며 사는 그 사람이 참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