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빈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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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빈 집에서

김희건 목사 0 04.20 07:48
네 시간 반 운전 끝에 누나 집에 도착했다. 우편함에는 한달 동안의 편지들이 수두룩 쌓여 있었다. 매달 지급해야 할 물 값, 전기세, 거기에 더해 병원에서 청구하는 약값 청구서들도 있었고, 그보다 더 많게 정치인들의 정치 자금 요청서들이 쌓여 있었다. 누나는 어떤 정당을 지지하여 돈을 보내 주었던 것 같다.  
누나가 써준 수표로 일일히 응답해 주고 홀로 빈 집에서 누나를 추억한다. 30 여년 전 나는 누나의 초청으로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누나는 버지니아 주에서 간호원(RN)으로 일하고는 18년 전 은퇴하면서 이곳 웨스트 버지니아로 이사왔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누나는 주로 홀로 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늙음과 노쇠함으로 지난 2월 말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다리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여 주로 누워지내면서 다른 사람들이 차려 주는 식사를 하다가, 마침내 요양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례를 주면서도 사람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누나를 위해 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 요양원은 깨끗하고 친절했다.
2월 어느날 앰블란스 차가 와서 누나를 데려 갈 때, 누나는 2층에서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난간을 꼭 잡았다 놓았다. 마음으로는 가기 싫은 길을 가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이 집으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 것이다.
지난 수 년 간 누나로 인해 마음 눌려 지낸 것을 생각하면 요양원에서 돌봄을 받게 된 것이 참 다행으로 여겨진다. 내 마음의 짐이 벗겨져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지금 이 시간 평온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거기서 다른 노인들과 게임도 하고 돌봄을 받는 것이 홀로 집에 머물러 지내며 다른사람들의 돌봄을 받는 것 보다 낫다고 할 것이다.
누나의 가는 길은 모든 사람들이 마침내 가게 되는 길을 미리 보여 주는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살던 집을 떠나 병원으로, 또는 어디로 실려 갈 것이다. 일찌기 옛날 독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처럼, 사람은 잠간 집에 머물다 떠날 나그네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집도 결국 언젠가 떠날 여관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그 책의 내용이 그러했다
집 안 곳곳에는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흔적이 남아있다. 벽 전체에 예수님의 생애가 담긴 그림들을 붙여 놓았고, 혼자 성경 공부를 했던 주석 책들, 여러 종류의 성경 책들이 꽂혀있다. 그 중에 Wiersbe의 6권으로 된 영문 판 구약과 신약 주석책은 정말 좋은 것인데, 나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주석 책을 누나가 가지고 있었다. 이 주석책을 누구에게 주면 빛을 발할까?
사람들은 종말, 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은 그 핏속에 철저히 현실 중심적이라고 썼던 옛날 이규태 씨의 글이 생각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몹시 종말론적인 메시지를 증거해 주고 있다.
종말론적 메시지란, 인간의 끝, 역사의 끝을 미리 바라 보면서 살라는 가르침이다. 그 끝을 미리 보고 준비하는 것이 참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다.초대 교회가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받는 이유 중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는 데 있다. 자기 눈 앞에서 들려 올리신 주님이 곧 오실 것을 믿고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에 힘써 살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끝은 금방 다가온다. 지난 수 십년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신속히 지나갔고, 남은 날들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고 사는 것이 그 사람의 지혜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 남은 날들이 한참 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짦은 남은 날들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참 지혜일 것이다. 최선의 삶이란 또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감사할 줄 알고, 감사 속에 살아야 한다.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가장 추한 것은 나이 들어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선의 삶을 위해서는 이웃에서 베풀며 살아야 한다. 욕심을 절제하면서 가진 것으로 베풀며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 될 것이다.
머지 않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심판의 주님 앞에 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고하는 날이 있음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 있던지,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늘의 큰 손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아는 것도 지혜에 속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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