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었던 글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대학교 1학년 독어 강독 시간에 읽었던 쉬바이쳐 박사의 "청년시절에 대하여(Uber die Ugentheit)"라 할 것이다.
쉬바이쳐 박서는 중학교 때 나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학교 계단 벽에 걸려 있었던 하얀 수염의 사진을 보고 오르내리면서 그는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되고 싶었던 것도 그가 살았던 의료선교사였다. 중 3학년 때 나는 의대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러나 그후 적록 색맹인 것이 밝혀져 신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쉬바이쳐 박사는 그 글에서 자신은 17살 때부터 순수함을 지켜 살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사람들은 혹 어릴 때 귀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세상을 살면서 부대끼면서 다 내버리고 만다는 것, 그래서 오랜 세월을 지나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는 텅빈 인생을 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어려서부터 귀하게 여겼던 순수함을 지켜 살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그때 읽었던 글이 오랜 세월 마음에 가슴에 남아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순수함의 가치를 지켜 살려고 애썼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순수함의 반대는 거짓과 위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고, 거짓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옛날 신학교 시절 강의실에서 들었던 곽선희목사님의 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몰래 무슨 짓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쳐다 보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보지 않은 가운데 무슨 짓을 못할까?
이 순수함은 신앙 생활의 본질이고, 더 넓게는 모든 예술 세계에서도 이 순수함이 그 예술과 예술가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본다. 순수함이 없이 신앙 생활이나 예술 활동은 장사 속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순수함을 지켜 살기 위해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거짓 세계에서 외롭게 살거나 핍박을 이겨내야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신앙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 또는 지도자의 입에 거짓말이 쉽다는 것이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범하는 사람도 있다.
예술 세계에서도 이 순수함을 잃어 버리면, 그 하는 일이 상업주의에 팔려 가고 말 것이다. 이 순수함을 지켜 사는 사람은 돈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 세계의 가치를 위해 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순수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 귀중한 가치로 인정을 받게 된다. 쇼펭, 슈베르트의 음악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의 작품 속에 그들 영혼 속의 순수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 삶을 사는 증거는 하나님의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알고 그를 따라 살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겐 거짓이 없고, 그 하는 말씀 하나 하나가 진실하고, 우리들의 유익과 선을 목적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항상 선하고, 우리의 풍성한 생명을 위함을 알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 경배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살고 그 뜻을 환영하며 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