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권위,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권위나 권력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의 세계에서 권력은 그 사람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그 권위와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첫째는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요, 힘이다. 무릇 권력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소유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추구한다. 돈이 곧 권력인 사회를 살기 때문이다.
정치 세계에서 권력의 자리를 탐하고 추구하는 이유는 그 자리는 돈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치 세계의 장, 심지어 교회 세계의 장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력과 물질적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야당 지도자의 눈물 겨운 사투의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다.
왜 밥을 굶고 투쟁하는 그 사람 옆에 함께 앉아 있기를 원할까? 그가 총선의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불법과 거짓의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지지를 표명하고 그 양반 마음에 들기를 힘쓰는 사람들은 정말 비참하고 부끄러운 정치 모리배들이 아닐 수 없다.
그 됨됨이와 상관없이 돈과 권력은 힘이요,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정서가 교회 안이라고 없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면, 교회 세계에서 권위와 힘을 갖는 사람은 돈 많은 교인이나, 돈을 주무를 수 있는 큰 교회 목회자이다.
오래 전 어느 교회 기관 책임자가 한참 어린 어느 큰 교회 목사에게 90도 머리를 숙여 절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도하였다. 그 장면을 옆에서 보면서 몹시 쓸쓸한 느낌을 가졌다. 이 노회 책임자는 돈의 위세를 알기 때문에 나이 어린 그 목사에게 공손히 절하고 머리를 숙이더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작은 교회 목사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일면이다.
그러나 교회 세계에는 목회자로서 체신과 권위를 지켜야 한다. 자신의 삶과 사역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확신이 없는 목회자는 돈의 위세 앞에 비굴하게 사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권위의 소재는 어디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 높아 지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높이며 살기 원한다. 우리가 어디서 불러냄을 받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와 죽음의 종된 생활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선택핱 사람들일뿐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권위는 거짓 없는 깨끗한 삶에 있다. 또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은 성경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그 사람에게 권위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 한국 신학교에서 들었던 또 다른 권위가 있었다. 그것은 청빈의 삶에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사치 부리지 않고, 청빈의 삶을 실천할 때 그것도 또한 권위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존재의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있을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찾고 구하는 돈과 권력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참으로 자유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구속할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뿐이다. 돈과 권력의 유혹을 받을 일도 없다.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나 자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러나 교회 세계 안에 언제부터인지 돈이 위세를 부리는 세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풍조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가짜 목회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사람들이 교회 세계의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교회 세계의 장이 되려 하면 실세인 "그 목사"를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한다거나, 권력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불법을 서슴치 찮는 사람들이 있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와 관련된 기관이 점점 더 오염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권위는 하나님에게 있고, 깨끗한 양심과 믿음 안에 소재한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