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마음 관리가 참 중요하다. 마음 관리를 잘하면 늘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살 것이고, 그 관리에 실패하면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심령의 가치를 가르치고, 그 심령의 평안함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텅빈 심령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외적인 조건, 대체적으로 물질과 지위에서 마음의 채움을 찾으려는 것 같다.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작음을 외적 신분에서 보상받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장"이 되고 싶어 한다.
교회 세계에는 "장" 자리도 많다. 총회장, 노회장, 당회장, 총장, 학장, 대학원장, 이사장... 이런 자리는 사실 섬김을 위해 주어지는 자리인데 언제부터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자리로 인식되는 것 같다.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그런 직분을 갖게 되면 더 높아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텅빈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 구원의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마음의 채움을 얻고 감사의 삶을 살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사신다는 이 신비하고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다른 무엇을 찾아 심령의 만족을 찾으려 할까?
우리를 충만케 해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 우리 구원의 주님이시다. 그를 모시고, 그분의 가치를 알고, 믿음과 감사와 경배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그 마음의 채움을 말할 수 있다. 그 진리를 모르면 사람들은 텅빈 마음에 무언가로 채우려는 안쓰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솓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 14-15).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말씀은 영혼의 목마름을 아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약속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물을 찾지 않고 눈에 보이는 물질과 명예와 직위 안에서 만족을 찾으려 한다. 우상 숭배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그런 삶에는 만족 대신 목마름이 더 커질 것이다. 그 영혼의 허기짐으로 인해 더 많은 물질과 더 높은 직위를 찾게 될 것이다. 주변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주님이 주시는 "그 물"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이라고 해석(요7: 38-39), 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고후 4: 6-7 참조). 사마리아 여인은 구세주 예수님을 알아 보고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전도자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교회 안에 있으면서 그 목마름의 답을 엉뚱한 데서 찾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문제다. 겸손히 열린 마음으로 우리 구원의 주님을 알고 믿는 삶을 찾지 않고, 외부적으로 무슨 직의 장 자리에서 찾는 사람이 있어 문제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무엇을 배우는 데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목회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이 교회 생활에서도 열심히 배우고 따라온다. 학창 시절을 성실하게 보낸 사람들이 교회 생활에서도 성실하게 신앙 생활한다. 우리가 구원의 주님 안에서 누리는채움과 행복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성경을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벧후3: 18). 물론 겸손과 기도로 배워야 한다. 그런 배움의 삶을 통해 신자는 주님 약속하신 그 심령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