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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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며

김희건 목사 0 2023.09.13 09:30
요즘 임윤찬의 연주를 듣는 즐거움에 빠졌다. 작년 6월 반 클라이번 콩쿨 마지막 날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듣고 또 들어도 감격이 몰려온다. 똑같은 곡의 여러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도 이 젊은 청년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더 갚은 격조가 느껴진다. 그런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 
한국의 젊은 청년이라는 점에서 더 마음이 끌리고, 더 감동을 받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평생 민족적 운명과 유대성을 떠나 살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서와 핏 속에는 예술적, 음악적 감각이 더 발달하지 않았을까? 요즘 세계적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연주자는 대부분 한국의 젊은 청년이라고들 한다. 대견하고 반가운 소식이다.
몇 년 전 조성진씨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해서 국민적 경사가 되었었다. 그런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조성진씨보다 임윤찬씨의 연주가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18살의 젊은 청소년이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고 내면의 연주를 펼쳐가는 모습에 더 감동을 받게 된다. 외국 연주자들에 비해 한국 연주자들은 그 얼굴에 감정의 표현이 더 진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임윤찬씨는 그런 감정을 내면화하는 것 같아 더 마음에 든다.
음악의 조상은 가인의 후예 유발이다. 그는 수금(harp)과 퉁소(flute)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가인의 후예가 음악, 또는 예술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살면 그 허무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간의 삶은 공허, 허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삶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궁극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텅빈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음악과 예술을 통해 위로 받고, 삶의 의미를 찾았던 것이 아닌가?
사실 명 연주가들의 연주를 보고 듣는 시간, 사람들은 초월적 세계(ecstasy)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 세상 밖, 또는 망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종교학에서 초월은 시간을 망각하는 경험을 가리킨다. 그런 초월의 경험은 이 거칠고 허무한 세상을 이겨내는 힘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어디서 사람은 그런 초월의 경험을 갖게 될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음과 뜻을 다해 드리는 예배 속에서 이런 경험을 갖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듣는 시간, 우리는 이 세계를 잊고 초월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어떤 분은 찬양 속에서, 어떤 분은 기도 속에서 그런 초월의 경험을 갖는다. 그런 초월의 경험이 세상을 이기는 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옛날 Princeton 신학교 시절 종교학 시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다.
옛날 해외 근무 시절 나는 잠들어 있는 시간 옆 방의 동료들은 밤새도록 고스톱을 치면서 망아의 세계 속에 빠져드는 것을 보았다. 고국을 떠난 외로움을 그 놀이 속에서 잊고 웃고 떠들면서 밤을 보냈던 것이다. 그것도 초월에의 경험의 시간이었다. 이민 생활에 지친 어떤 분은 카지노를 찾아가 코인을 넣고 몇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런 망아의 시간을 찾는 것 아닌가?
남녀의 사랑의 경험도 초월에의 경험의 시간이라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속삭이고 함께 있고 싶어사는 것도 삶을 활력있게 해 주는 경험 아니었던가? 보통 사람들은 이 허무하고 거친 세상을 이겨내기위해 그런 시간을 찾고 목말라 한다. 술과 담배도 잠시 사람을 이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수단이 아닌가?
그런데 음악 또한 우리를 초월에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이 젊은 청년의 연주를 보고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아름다운 소리에 빠져든다.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연주자는 더 깊은 감동을 전해 주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음악을 즐기다 보니까, 누가 그 내면의 깊은 소리를 전해 주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똑같은 피아노로 만들어 내는 소리가 똑같지 않다.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창조해 내는 연주자는 정말 대단한 예술가가 아닐 수 없다.
이 음악이 독특한 것은 음악은 모든 종교, 신분, 사상을 초월해서 사람의 영혼 속에 깊은 감동을 주는 데 있다. 그 음악이 예술적 가치로 우리 심금을 울리기 위해서는 삶의 허무와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죽음을 맞아 들일 수 없다.
우리는 사실 얼마나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가? 우리의 잠시 살아가는 이 생명은 죽음 앞에서 더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이 생명을 어떻게 살고, 어떤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하는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참 역설적이다. 생명은 죽음이 있기에 더 빛난다는 것이다.
예술의 가치도 인간 삶에 스며 있는 허무와 죽음을 의식하면서 탄생되는 것 아닌가? 조수미씨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그 소리가 항상 아름답게 들려올 수 있을까? 늙고 죽는 인간의 여정이기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지 않는가? 옛날 해외 근무 시절, 항상 문 앞에 피어 있었던 유두화 꽃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생명의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면서 누리는 자유와 풍성한 생명도 우리가 죄와 죽음의 세상을 살기 때문에 더 가치있는 것 아닌가? 모든 생명은 죽음 앞에서 빛을 발하고, 죽음의 길을 가는 인간이기에 짦은 삶의 여정 속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 아닌가?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느끼는 그 허무가 더 깊었기 때문에 음악과 예술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을까?. 인간의 삶의 허무와 죽음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음악이나 예술, 더 나아가 종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 보다도, 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의식하고 즐거워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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