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두 가지 다른 영이 있음을 가르친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도 진리의 영이 그 사람 속에 역사하기 때문이고, 진리의 영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진리를 듣지 못한다고 가르친다(요일 4: 5-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도 사실 하나님 편의 계시, 진리의 영이 역사(work)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편의 계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고 섬기게 된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이런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지혜와 계시로 깨닫고, 듣고, 응답하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 신자는 우리를 불러 이 구원의 삶을 삵게 해 주신 하나님께 평생 감사의 마음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살기 원한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의 유일한 소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고, 이 세상과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참 백성의 동기요, 소원이라 가르친다(고후 5: 9).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늘날 세상에 거짓의 영이 얼마나 왕성하게 활동하는지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성령과 자기 종들의 입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택한 자들을 부르시기를 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참 백성은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듣고 따라 살기 원한다. 우리는 날마다 그 말씀을 의지해서 소망을 든든히 갖기도 하고, 위로를 받아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진리 밖에 사는 사람들은 미혹의 영의 세력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거짓된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른다. 오늘날 정치 세계, 종교 세계에 얼마나 거짓된 말들이 횡행하는지,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 세계에서 거짓말이 난무하는데도 그 거짓을 따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고!
그런 사실은 종교의 세계에도 그대로 통한다. 사람들은 자기 소신이라고 믿고 따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 속에 미혹의 영이 역사하여, 거짓 것을 따르고 추종하게 만든다. 문제는 자기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는지 실상을 모르고 따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은 어떤 영의 종이 되어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과거 하나님의 종들, 성 어거스틴이나 루터가 일찌기 밝혀 주었던 진리의 가르침이다.
그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은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 어떤 영의 지배를 받는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어거스틴, 루터는 그런 사실을 타고 다니는 말에 비유했다. 말은 스스로 갈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 위에 탄 사람의 지시를 따라 갈뿐이다. 성령의 지시를 받는 사람은 생명과 천국의 길로 향하고, 악한 영의 지시를 받는 사람은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형벌의 장소로 나아간다고 가르쳤다.
멀리 고국의 뉴스를 둗는 마음은 착잡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할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따르는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현재와 장래를 미리 보는 안목을 갖는다. 그러나 미혹의 영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심판과 파멸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살까? 믿는 우리들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장차 대면할 주님을 바라보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눈 앞의 이익과 만족을 좇아살면서 무서운 심판을 향해 가고 있다.
미혹의 영은 세 가지 정욕으로 사람을 미혹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바로 그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눈 앞의 이 욕심에 끌려 살면서 장차 다가올 심판을 향해 가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만족이 없고, 장차 올 심판의 두려움이 그 영혼을 지배한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살면서 그 마음이 평안할 리가 전혀 없다.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노아의 대홍수 때에도 구원받은 사람들은 겨우 8 명이었다. 그 외 모든 사람들은 그 홍수 심판 속에서 죽고 멸망했다. 어른, 어린 아이 구별이 없었다. 장차 심판의 날에 구원 받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심판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도 반응이 없고 오히려 반발심을 갖는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도, 교회 안을 출입하는 사람(교인)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살고 있을까? 정말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 삶의 목적과 동기가 다를 것이다. 자기 성취와 욕심을 위해 살지 않고, 장차 대면할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살 것이다. 오늘 새벽에 읽은 말씀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 10).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장차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그 날을 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