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김희건 목사 0 2023.11.30 10:31
요즘 새벽 기도 말씀으로 고린도 후서를 읽고 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고후 12: 9절 말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이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안고 그 불편과 고통 속에서 치유를 위해 세 번 기도했지만, 그가 들었던 말씀은 이 말씀이었다. 보통 신자같았으면 자기 기도가 좌절됨을 인해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이 왜 주어지는지를 알고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신자들은 어떤 소원과 목적이 있어 하나님을 찾아가 기도한다. 그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는데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은 훨씬 높고, 그 뜻이 우리를 더 높이 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없다는 것이 옳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 8-9). 하나님과 인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의 연약함 때문이다. 오직 계시에 의해,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어 우리로 깨닫게 해 주심으로 비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아는 신자는 항상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를 구할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거두어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주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였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 주님의 일꾼이었다.
오늘도 하늘의 하나님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붙드시고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공통적으로 겸손하다. 자기 자랑하지 않고, 자기를 높이려 하지 않는다. 교회 세계에서 가짜들이 자기를 높이려 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에 임하시고, 풍성한 은혜로 갚아 주신다. 겸손한 마음에는 항상 풍성함이 있고 감사가 흐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작음을 알고 겸손히 의지하는 사람에게 크신 능력을 나타내신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집에서는 겸손한 사람, 자신의 작음을 아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사용하신다. 모세도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자신의 작음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귀중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가장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동방박사처럼,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엎드려 경배함이 옳을 것이다.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다. 십자가 위에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르신 까닭은, 교만한 마음들로 깨닫고 마음을 낮추어 낮은 자리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살라 하심이 아닌가?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도 그 무게 중심이 낮을수록 바람과 파도를 견디는 힘이 크다. 사람도 평소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 때, 상처 받을 일이 없고,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살게 된다. 겸손한 마음은 큰 상급을 얻는다. 사람들의 처신을 인해 요동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가장 낮추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는대신 하늘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며 산다. 그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믿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강이 따른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작음을 고백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신의 입의 부정함을 탄식하였고, 혈기 가득했던 바울도 땅에 엎드려져 물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가 무엇을 할까요?" 구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대답하는 대신 겸손히 묻는 삶을 산다.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어떻게 살까요?
폭풍이 몰아친 다음, 키큰 나무들은 뿌리채 무너져 쓰러졌지만, 땅위의 풀들은 유연한 모습으로 폭풍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있었다. 낮고 작은 모습으로 살면서도 폭풍을 이기는 지혜와 힘이 있었다. 우리는 키 큰 나무로 살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추고 살아가는 풀의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한다(벧전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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