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죄인지 모르는 무지함

죄가 죄인지 모르는 무지함

한준희 목사 0 2023.02.11 07:43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신병 3명이 전입을 왔다.

내무반 군 서열로 꽤 고참에 속했던 나는 신병들을 앞에 세워놓고 군기를 잡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 기억해 보면 좀 가물가물하지만 그들에게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체격이 작은 나에게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신병이 나를 노려보고 무언의 반항을 했던 녀석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던 것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난 고참으로 그렇게 사람을 두들겨 팰 위치에 있었고 그렇게 폭행을 하는 것이 당연한 내무반 분위기였다. 이런 신병전입 신고식은 꽤 오래 된 우리 부대의 전통이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나도 신병 때 그런 폭행을 당했었고 그 이후에도 새로 전입오는 신병들은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우리 부대 소속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문득, 내가 그런 폭행을 했던 인간이었다는 것이 생각이 나면서 과거에 난 정말 못된 인간이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때릴 수 있었을까, 50여년이란 세월동안 그런 못된 행동에 죄의식을 느껴 본적도 없었고 그것이 얼마나 나쁜 행동이었다는 것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군대였기에 또 고참이라는 완장을 찼기에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모자라 군대이야기만 나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다고 여겨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되어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그렇게 많은 못된 짓을 하고도 죄의식을 느껴 본적도 없고 그 못된 범죄행위에 대하여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 본 일도 없었다. 그저 젊은 시절 당연히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하고, 못된 짓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고 지내는 것이 당연한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니었었나 생각만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나간 젊은 시절의 못된 행동들을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행동이었던가, 목사로써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무지한 인간이 강대상에서 거룩을 외치고 성도들에게 의롭게 살아야 하고 회개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외치니 너무너무 성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셨기에 목사로써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난 자격 없는 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왜 그때는 그런 행동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을까, 영적인 의미로 보면 죄에 대한 무지였다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는 그것을 죄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젊었기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군대라는 환경 안에서 더욱이 고참이라는 완장을 찼기에 그렇게 폭행을 해도 된다는 그 당연함을 가지고 지내지 않았는가 생각이 든다.

그런 당연함을 직장 안에서 했었다. 당시 꽤 괜찮은 힘을 가지고 업자들에게 뒷돈을 받아내어 내 이득을 챙겼던 것 역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여기면서 당연시 하지 않았던가.

1971년 미국 스텐포드대학의 심리학자 짐바르도(Philip Zimbardo)라는 분이 감옥연극실험을 통해무엇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라는 부제를 붙여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 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의 결론은 사람은 주어진 직분이나 환경이 실존하지 않는 연극이라 해도 실제처럼 자기 직분을 악용하고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감옥이라는 환경에 들어가면 죄수역할을 맡은 사람은 죄수로써 행동을 하고, 간수역할을 맡은 사람은 간수로써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은 간수들에게 반항을 하고 욕을 하고 싸움까지 불사하고, 간수는 간수로써 죄수들을 함부로 대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명령을 해서 복종하게 함으로써 죄수들을 함부로 다룬다는 것이다. 이 연극을 하면서 죄수는 죄수로써의 악함이 나오고, 간수는 간수로써의 악함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악행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간수라는 완장을 찼기에, 감옥이라는 환경이기에 폭언과 폭행을 해도 된다는 의식이 생기고, 죄수는 죄수가 되었다는 것에 분개하고 복종하지 않고 간수에게 대들고 감옥에서의 대우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본성이 들어나면서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무대에서 주어진 환경 안에 완장을 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본다. 교회라는 역사적 환경 안에서 목사라는 완장을 차고 있으면 당연히 말씀을 가르치고 당연히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그 환경과 완장이 권위가 되어 사람들을 억압하고, 무시하고 또는 물질을 내 맘대로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해도 된다는 교만함으로 목회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목사이기에 교회 재정을 개인적인 욕망에 사용하고도 전혀 죄로 여기지 못하고 당연하다고 여긴다, 교계 단체에서 집행되는 재정을 회장이라는 완장을 찼기에 당연히 사용해도 된다고 여긴다. 물론 사용할 만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함 속에 그 돈이 교인들의 헌금이라는 것, 그 물질이 하나님의 돈이라는 인식이 들어나 있어야 정상 아니겠는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미쁘게 보셔서 은혜를 주셨고 그 은혜로 인해 나 같은 존재에게 완장을 채워 준 것이지 결국 당연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제 완장을 찼기에 어디에 어떻게 뭘 사용하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죄의식은 사라지고 죄의 무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죄를 죄인지 모르고 오늘도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여기는 무지함에서 벗어나길 기도해 본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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