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과 유다의 전국적인 붕괴 (이사야 3장 1∼15절)

예루살렘과 유다의 전국적인 붕괴 (이사야 3장 1∼15절)

한삼현 목사 0 2023.07.22 10:53

(1) 왜냐하면(For)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제하여 버리신다(히필 분사, 서술용법).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support and staff)1)

곧 모든 양식의 공급과 모든 의 공급을 (제하여 버리시며)

(2) 용사(기뽀르)와 군인(전쟁의 사람), 재판관과 예언자, 점쟁이(diviner)와 장로(elder)2),

(3) 오십부장과 귀족3)과 모사(군사고문), 지혜로운 장인, 분별력 있는 요술사를 (제하여 버리신다).

(4) 그리고 내가4) 소년들을 그들의 고관᜶방백으로 삼을 것이며

어린 것들(변덕스러움)5)이 그들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31절 첫 단어는 왜냐하면([] )으로 시작하는데, 바로 앞 2장과 연결됨을 암시한다. 2장의 마지막은 인생을 의지하는 것을 그치라는 호소이었다. 이제 3장에서 확장된 설명(“왜냐하면”)이 이어진다.6) 특히 지도층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 3141은 이사야 2622(사람이 망친 예루살렘)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elaboration)이라 할 수 있다.7) 대략적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엄청난 붕괴를 다루고 있다. 먼저는 지도층의 급변에 관하여(24), 다음엔 백성과 사회의 분열과 격동(512), 그리고 여호와께서 지도층을 꾸짖고 심판하시는 모습(1315), 마지막으로 시온의 딸들(상류층 여인들)의 굴욕(1641)을 소개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고 의지하는 모든 것(support and staff)을 제하시는데, 가장 먼저는 양식과 물을 제거한다(1, support). 이것은 생존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23절에서는 유다의 스텝(staff), 지도층 인물(군사력, 정치력, 종교지도력, 점쟁이)들을 제거하실 뿐만 아니라, 4절 이하에서는 소년들(lads), 곧 철부지들을 고관᜶방백으로 세워 폭정을 하게 만드신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서로 내분하게 되고 젊은 층이 노인층을 향하여 대어들게 된다(하극상). 결과적으로 사회질서는 완전히 붕괴되고 어느 누구도 이를 회복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5) 그리고 백성들은 서로서로 거칠게 대할 것이며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다그치며)

젊은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거만하게᜶예의 없이 대할 것이다.

(6) 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집안)의 한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겉옷이라도 있으니, 우리의 통치자(chief)8)가 되어서

이 폐허를 네 손아래 있게 하라고 할 것이면,9)

(7) 그 날에 그가 (소리) 높여 10)이르기를

나는 결코 고치는 자(healer)11)가 되지 아니하리라.

왜냐하면([] And)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결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세우지 말라.”

 

67절에서 우리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공동체와 지도층의 몰락을 목격한다. 그런 와중에도 겉옷만을 보고서 백성은 그에게 폐허의 회복을 기대하고 리더십의 발휘를 요청한다. 그렇지만 그 자신까지도 결코 치유 자, 곧 백성의 운명을 고치는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을 절규하고 통곡하고 있다(인간의 전적 타락을 보는 듯하다).

 

(8)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넘어졌고 유다는 엎드러졌기(멸망의 비유) 때문이라.

이는(because) 그들의 혀()와 그들의 행위가 여호와를 대적하고 있으며

그의 영광의 (현존)을 범하였기(defying his glorious presence) 때문이라.

(9) 그들의 얼굴색이 자신들을 증거 하고 있다.

그들이 그들의 죄를 소돔과 같이 발표하고(proclaimed) (죄를) 감추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영혼에게 화가 있도다 이는(for) 그들이 자신들에게 재앙을 불러들였음이로다.

 

여기서 우리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멸시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눈앞에서(현존 앞에서) 여호와를 멸시하였던 것이다(삼상 230). 나아가서 그들의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다. 소돔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해졌음을 알리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 죄가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않았더라(악의 상태가 궁극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되다고 말하라. 이는 그들이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라.

(11) 악인에게는 가 있으리로다. 이는 그의 손의 보응이 그에게 주어질 것임이라.

(12) 내 백성(도치 강조), 그들을 억누르는 통치자들은 어린애 짓을 하는 자들이요

그리고 여자들이 내 백성을 다스렸도다.

내 백성이여(도치 강조), 너를 이끌었던 자들이 너를 혼란케᜶잘못되게 하였도다.

너희의 가야할 길을 그들이 삼켜버렸도다(파멸의 비유).

 

신자가 매순간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1011). 하나님께서는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기본적인 원리다.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972)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2610) (θ) 백성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였던 근본적인 까닭은 그들의 지도자의 잘못이었음이 드러났다(12). 이것이 또한 예루살렘과 유다의 파멸의 이유이었다. 1315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도층의 죄를 꾸짖으시고 심판하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고 계시도다(니팔 분사, 서술 용법).

그리고 그가 백성들(온 민족세계)12)을 심판하시려고 일어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심문᜶재판하러 오실 것이다(enter into judgement).13)

그의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고관들과 함께14)

그리고 포도원(의 열매)을 불살라버린 것(삼켜버림에 대한 비유)은 바로 너희들이로다.

가난한 자들로부터 약탈한 탈취물이 너희들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는가

그리고 (너희가)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는가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각주


1) B.D.B.는 “support and staff”이란 “의지가 되는 것, 곧 물과 양식, 그리고 스텝, 곧 지도층 사람”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한다(p. 1044). 그리고 Slotki는 그의 주석에서 같은 명사의 남성 형과 여성 형을 나란히 사용하면서 “모든 종류의 의지하는 것”(all kinds of support)을 암시한다고 설명한다(Slotki, p. 15).

2) Slotki에 따르면, diviner(점쟁이)는 “징조를 연구하면서 그것에 따라서 정권(정부)에 조언하는 사람”이며, 장로(elder)는 자문단(Councillor)이라고 설명한다(p. 15).

3) 문자적으로는 “얼굴이 들려지는 자”라고 표현한다. 의미적으로는 “정중하게 대접을 받는 자”존귀한, 저명한 자이다(나아만을 “존귀한 자”라고 말한다). B.D.B. p. 670.

 4) 번역은 “그가”, 즉 “여호와께서”라는 말이다.

 5) 히브리어 단어(“타알룰림”)는 남성 복수 추상명사로서 wantonness, caprice(변덕스러움)을 가리킨다. 아마도 그 어근(“알랄”)을 “어린 아이 같이 변덕스럽고 짓궂고 미심쩍다”라고 하든지, 혹은 “울”(애 노릇하다)이라고 하든지 간에, 어느 경우에라도 본래적인 의미는 아주 잘 잊어버리는 것(변덕)을 의미한다(B.D.B. p. 760).

 6) 알렉 모티어, p. 117.

 7) 한편 이사야 4:2∼6(“메시아 시대에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사야 2:2∼5(“여호와의 성전 산᜶Zion의 높아짐”)에 대한 확장된 서술(elaboration)이라고 할 수 있다(Slotki, p. 20).

 8) “카친”(히)이란 “지방 재판의 결정권자’(decider, a local justice)라고 설명한다(Slotki, p. 16, B.D.B. p. 892).

 9) 6절은 조건절(키=when)이며, 7절이 귀결절이다(Slotki, p. 16).

 10) 히브리어 단어는 그냥 “들어 올린다”(lift)라는 동사만을 사용하고 있다. 분명하게 목적어(눈, 소리, 손, 얼굴…?)를 생략하고 있다. 그래서 B.D.B.는 ‘콜’(voice)이 생략되었다고 밝힌다(p. 670). 또 다른 한편으로 “손”을 드는 것이라고 본다면, “항거 또는 거절에 대한 맹세의 태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Slotki, p. 16).

 11) 동사의 기본의미는 상처를 “붕대로 싸매다”(bind up)는 말로써, 비유적으로는 고통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한다는 뜻이다(눅 10:34을 참고하라). B.D.B.는 본 구절의 의미를 “백성의 운명을 고치는 자”로 규명한다(p. 270).

 12) 알렉 모티어, p. 125.

 13) B.D.B. p. 1048.

 14) 히브리어 구문은 명확하게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과 함께 (재판장으로) 오신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 독자는 재판에서 “백성의 지도층 인물”을 배심원이나 방청객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글 번역들은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개역과 개역개정은 “장로들과 고관들이 여호와의 재판᜶심판의 대상”(피고)으로 번역하고 있다. 새 번역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고관들을 세워놓고(피고로), 재판을 시작하신다.”큰 문맥에서 하나님께서 지도층 인물(staff)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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