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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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 (1)

이민철 목사 0 2023.03.14 07:19

11-1장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 (1)
         (What Is Deity of Christ?) 


11-1장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1): 우리는 삼위일체의 위대한 신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경에 의하면 오직 한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한 하나님은 세 인격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신격(神格)의 세 위(, 인격)가 동일한 한 구절에 언급된 곳이 신약성경에 몇 곳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의 아주 더 중요하고 넓은 부분은 그 위대한 교리의 부분요소들이 언급된 구절들에서 발견된다. 그 부분들을 모을 때 완전한 교리(the completed doctrine)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나는 그 교리의 한 가지 중대한 중심적인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the deity of our Lord Jesus Christ)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간해 말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그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 분명하게 말해야 하겠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용어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는 주장이 오늘날 흔히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정반대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말해야 하겠다.


나의 친구들이여(my friends), 한 사람이 자기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말할 때, 혹은 그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고 말할 때, 그러한 주장의 의미는 그것을 말한 사람이 '신성' (神性)이나 '하나님' 이라는 용어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만약 한 사람이 신성에 대한 낮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가 자기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낮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그가 하나님에 대한 낮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가 자기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예수님에 대한 낮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혼란이 들어오는 곳이 이곳이다. 어떤 불신자가 자기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어떤 기독교인은 그 불신자가 신성이나하나님이라는 용어의 기독교적 정의가지고 있다고 단 정한다. ‘신성이나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의미하는 그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단순하게 생각한다. 즉 그 용어들은, 모든 유한한 것들과 완전히 분리되는, 세상의 창조자와 통치자이신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 결과로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 신앙과 아주 거리가 멀게 보이는 한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그러한 용어를 사용할 때 그는 아주 큰 감동을 받는다. 그는 이렇게 외친다 : “그 사람이 자기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당신은 듣지 못했습니까? 그가 예수님을'하나님' 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그가 그리스도의신성을 믿는다면,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 이라고 부르기를 기뻐하고 있다면, 그는 그렇게 크게 잘못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어떤 특별한 문제들에 있어서 비() 정통적 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근본적인 신앙은 그 속에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의 유명한 불신자들 중의 한 사람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들을 때, 그들이 속고 있구나 하는 슬픈 감정을 나는 가진다. 그것은 심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 점을 강조한다. 만약 내가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정말 바르게 이해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나는 단지 강연의 한 부분 뿐 만 아니라 연속 강연 전체를 그것을 위해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상태를 관찰하면 할수록, ‘신성이라는 용어와 하나님이라는 용어의 이러한 이중적 사용이 말할 수 없는 해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인 더욱 확신한다. 그 용어들을 자기들의의미대로 사용하는 불신자들의 경향은, 그 용어들을 그들의 의미대로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경향과 결합되어, 교회 안에서 기독교와 불신앙 간의 중대한 문제점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 결과는, 교회의 기초가 내부(內部)로부터 침식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정통적 용어의 이와 같은 사용에 의해서 기독교인들을 달래어 재우고 있다. 불신자들은 조용하게 지배력을 획득하고 있다. 교회의 젊은이들은 불신앙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다. 귀중한 영혼들이 멸망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친구들이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겠다. 우리는 빛을 찾아야만 한다(We ought to seek light.).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빛을 달라고 기도해야만 한다(We ought to pray God). 사람들이 단어로 만족하는 것을 멈추고 그 단어의 의미를 끈질기게 바라보도록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라는 용어의 기독교적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 우주의 창조자와 통치자(統治者)이신, 인격적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다고 말할 때, 혹은 그가 자기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역사상에 나사렛 예수님으로 알려지신 바로 그 분은, 그가 사람이 되시기 전에, 영원 전부터 거룩한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이신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다는 뜻이다.


현대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적용하는, 그리스도의 신성' 이라는 용어 혹은 '하나님' 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매우 다르다. 그들은 기독교적(基督敎的)인 의미와 전적으로 다른 의미로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여러분은 말할 수 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예수님에 관해 말하는 내용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큰 이유는, 그들이 말하지 않을내용들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들을 행하셨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항상 참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물(代贖物)로 죽으셨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가 제 3일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하나님이셨다고 말한다. 그들이 그는 하나님이셨다고 말할 때, 그들은 정통적인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그러한 정통적인 주장은 그들이 주장했던 비정통적인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신용을 줄 것인가?


우리는, “아니오, 천 번이라도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이 사람들이 자기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가장 정통적인 것이 아니고 가장 정통적이지 않은 것이다. 성경의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정통적이고 복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재구성된 이러한 가련하고 망상에 사로잡힌 광신자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서운 신성 모독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낮게 천박하게)생각해야 하겠는가!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 이라는 용어나 신성이라는 용어를 순전히 인간인 예수에게 그들이 신약성경의 진술을 거절한 후에 구성했던 순전히 인간인 예수에게 적용할 때, 그들은 어떤 의미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인가?


때때로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름으로써 단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과거의 세대(世代)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자들의 종교적 경험과 동일한 종교적 경험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교회의 신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러한 신경들의 작성자들이 믿었던 의미대로 그가 하나님이시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그 신경들을 사용하기를 중지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 신경들의 작성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을 때, 그들은 우리도 역시 참여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경험을 그 당시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 신경들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물론 그것들을 문자적으로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교회의 역사적 신앙의 표현들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들-그리스도의 신성의 교를 포함하여 밑에 있는 영적 의미를 붙들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신경들에 대한 그러한 암송들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음에 대한 그러한 고백들은 오늘날 교회에 말할 수 없는 해독()을 끼치고 있다. 확실히 그것들은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과 공감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전통적 용어의 이러한 사용이 옛날의 성당에 있는 착색유리와 같이 보인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일종의 희미한 종교적인 빛 안에 둔다. 그것은, 무례한 대낮의 빛 안에서 보면 순전한 불신앙으로 나타날 것에게 장엄한 거룩함의 빛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반 성도들이 속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들은 한 사람이 신경들을 되풀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것들에 대하여 아주 열심히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믿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열렬하다. 그들은 단순히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항상 그 말로 의미해 왔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교회 안에 용납하고 그를 권위를 가진 자리에 둔다. 시간이 흐른다(Time goes on). 그러한 많은 사람들이 더욱 더욱 큰 권위를 가진 자리에 들어오게 된다(Many such men are put into positions of greater and greater authority).


그들은 더러는 말로, 더욱이 특히 침묵으로 교회의 신앙의 기초를 파괴시킨다. 죽은 것 같은 애매함이 점점 교회의 증거에 악영향을 미친다. 교회의 젊은이들은 바른 교리 교육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하지만, 교회는 그 능력을 상실한다. 마침내 가면(假面)이 벗어진다. 참으로 성경과 교회의 신경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신앙에 관해 진지한 사람들은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취급을 당한다. 교회는 세상과의 연합에 떨어진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많은 교회들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것은 그런 식으로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말할 때, 우리가 위대한 신경들을 반복할 때, 우리는 옛날의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던 말의 한 형식을 단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참되다고 우리 스스로 정직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교회의 역사적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우리의’(our)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적 신앙이 우리 자신이 믿는 신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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