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을 내게 주소서!" - 초기 선교사 편지에 담긴 이야기 (9)
제목 : 인간의 부패에 대한 반면교사
글 : 조진모 목사(전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지금까지의 줄거리>
1884년 이후 미국 선교사들이 줄지어 조선 땅을 찾았습니다. 직접적인 전도가 불가능하였던 초기에 선교사들은 1885년 2월에 설립된 제중원을 중심으로 의료 선교에 집중하며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여실 것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점점 그들에게 다양한 사역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매번 지혜와 믿음으로 새로운 상황을 이겨나가야 했습니다.
초기 선교사
제중원을 설립한 의사 알렌은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였습니다. 후에 합류한 의료 선교사 헤론과 복음 선교사 언더우드 역시 같은 선교회가 파송하였습니다. 조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모두 태평양을 건너온 서양인들이었지만, 실상 3인은 전에는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선교지에서 처음 만나 약간 서먹했던 사이였습니다. 세 분 선교사들의 성장 배경과 성격 그리고 성격조차 달랐지만, 그들은 조선의 복음화라는 중대한 목적아래 협력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사는 일반적으로 초기 선교사들이 연합하였기에 조선 선교가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서술합니다. 특히 1890년까지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된 10여 명의 선교사들이 네비우스 선교 정책을 받아드렸으며, 그 후 선교지 분할 또는 단일 교단 발족 등 조선 교회를 위해 그들이 연합된 마음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란 자진 전도와 자진 운영 그리고 자주 치리를 중심하는, 조선 교회와 성도들이 온전하게 성숙할 수 있도록 실제적 도움을 주었던 선교 정책입니다.
그렇지만 실상 현장에서 동역하던 같은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은 초기부터 나름 심각한 갈등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알렌(1858년생)과 헤론(1856년생) 그리고 언더우드(1859년생)는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기본적인 동역자 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자주 충돌해야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이 그들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헤론과 언더우드가 선교 본부에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더 이상 알렌과 함께 사역할 수 없음을 알리고 타 교단으로 소속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알릴 정도였습니다.
인간의 부패
그렇다면 선교에 대한 열정과 사명에 불타는 심장을 지녔던 초기 3인의 선교사들이 갈등을 겪어야 했던 원인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선교 사역을 위해 구체적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의 의견차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갈등은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복음이 전해지는 곳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사역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심하게 분열되는 상황에 봉착한다면 일단 영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3인의 선교사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편한 감정이 생긴 뒤 함께 기도 모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상황을 맡기고 도움을 청한 것이지요. 그러나 기도 모임 이후 그들의 관계가 더욱 악화 되었습니다. 언더우드가 선교 본부에 보낸 편지에, 알렌이 기도회를 마친 뒤 보인 이중적 행동으로 인해 신뢰를 모두 잃었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선한 목적으로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그들이 무엇이 못마땅해서 하나가 될 수 없었는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 갈등은 부패한 인간이기에 생겨난 영적 문제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권력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개인의 욕심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중원 설립자인 알렌에게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헤론이 1886년 2월 27일에 선교 본부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중략) 알렌 의사는 의료 선교를 목적으로 제가 요구하였던 모든 기금들을 주어야만 합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알렌 의사가 의료 선교기금을 저에게 주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저에게는 상환청구권이 없습니다.” 헤론은 알렌이 제중원의 재정을 독점하자 시정을 요청하였지만 거부하자 해결해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말은 쌍방의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제 3자의 의견도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의사 사이의 갈등의 원인에 대하여, 언더우드가 1886년 9월 17일에 선교 본부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려운 문제의 대부분은 알렌 의사가, 우리가 그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았던 권력과 권리를 남용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 다미 상의도 없이 그러한 권력과 권리를 취하였기에 그에게 그러한 힘이 부가되는 것에 대해 반대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참아내야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괴로운 일을 겪은 헤론 의사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알렌 의사는 헤론 의사와 관계된 일을 그와 전혀 상의 없이 처리합니다.” 나아가 언더우드는 알렌이 사역에 대한 상의 또는 알림 없이 독주한 여러 가지 일들을 상세히 알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언더우드는 알렌이 재정에 대해 문제가 있음을 본부에 알렸습니다. “제 계산서는 선교부에 의해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고아원의 원장으로서 저는 감사를 받기 위해서 선교부에 계산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의료 사업과 관련된 계산서는 전적으로 알렌 의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감사를 받지도 않습니다.” 또한 연합을 깨는 결정적 사건을 다음과 같이 알립니다. “두 의사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것이 다 알려져 있으며, 알렌 의사가 헤론 의사를 자리에서 나가도록 명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중략) 이런 것들이 제가 사퇴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헤론 역시 두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알립니다. 1886년 7월 9일에 기록한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그녀(조선에 도착한 여의사 엘리스)가 언더우드 씨와 결혼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너무 경솔합니다.” 언더우드를 인격적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주 있어왔던 바입니다. 같은 해 8월 23일에는 헤론에 대한 글을 적었습니다. “왕궁에 두 번째 갔다 온 후, 헤론 의사는 어느 날 제게 오더니 그도 저와 같은 직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직접 가끔 왕궁에 가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왕궁에 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이번 주는 제가 근무하는 주라서 헤론 의사에게 대신 병원에 가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는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반면교사
조선을 위해 수고하신 선교사들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려니 마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이런 어두운 면은 감추고, 오직 그들이 언제나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사역에 임했다거나, 문제가 생길 때 마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다고 전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에 일어났던 심한 갈등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구원받은 죄인이었음을 확인받습니다. 또한 부족한 사람들을 들어서 사용하시어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초기 조선 선교사들은 갈등을 결국 봉합하였습니다. 서로 헤어지지 않고 갈등을 이겨낸 결과 같은 선교부에 남아 함께 한 길을 걷게 된 것이지요. 언더우드는 1912년에 개최된 제1회 장로회 총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습니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삶과 사역 현장이 곧 영적 전쟁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칫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들어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바로 내가“ 방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 (렘 17:9 상)
* 2022년 12월 14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8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