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글 : 한삼현 목사(뉴저지 빛과 소금교회)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소수 민족(minority)에 해당하는 국민들에게 이 표현은 너무나 희망적이고 꿈 같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처럼 ‘인구 절벽’을 넘어서 ‘인구 재앙’에 들어간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할 경우,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생육, 번성, 충만). 이스라엘 역시 이 세상에서 극히 소수의 사람으로, 아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했다(수 24:3). 그들은 갈대아인(“바벨”, 창 11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한 이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하였다. 이후로 3세대 만에 70명이라는 놀라운 증가를 경험하게 된다(창 46:8∼27). 더욱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출 1:7) 분명하게 이 표현은 믿음으로 의롭다는 칭함을 얻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창 15:5, 22:17)이었고 마침내 사대 만에 이루어졌다는 감동을 우리가 받는다.
열 재앙과 홍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하심을 경험했던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후 곧장 가나안 남부 지역으로 입성하였더라면 대략 열닷새길(15일) 정도의 여정이었을 것이다(신 1:2). 그러나 이스라엘(1세대)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광야에서 38년을 소모하는 어처구니없는 실패를 경험했다. 임종 직전에 있던 모세는 그 다음 세대(2세대)에게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회상하도록 하면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였다(신 6:4∼5). 오늘날 신자의 신앙 여정에서도 불신앙과 각종 불순종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많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고전 10:6∼11).
1. 모세
가나안 입성 직전에 있던 출애굽 2세대에게 모세가 전한 메시지는 참으로 많은 것을 회고하게 한다. 먼저 모세는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긍정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바로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70)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이스라엘)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신 10:22)고 밝힌다. 아브라함으로부터 3세대 만에 70명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신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셨다고 은혜와 감격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임종 직전에 애정과 충고를 담고 있는 메시지에서, 특히 불순종으로 실패할 것만 같은 민족적인 배도의 불길한 예언적 메시지에서(신명기 31장을 참고하라), 우리는 또 다른 느낌과 인상을 받는다. 특히 모세 사후에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지, 곧바로 그들의 불순종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보는듯한 예언적인 메시지에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다르게 바뀌었음을 우리가 목도한다. 너무나 부정적인 모습으로 바뀐 것을 보게 된다. “너희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남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라.”(신 28:62)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다수가 별안간 극소수의 남은 자와 대조되고 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칠십(70)명까지, 더 나아가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였던 긍정적이고 점진적인 증가, 확장과 팽창의 모습이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분명하게 어떤 저주와 심판으로 말미암아 대다수는 소멸되고 간신히 명맥을 이어갈 자(잔존한 자)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힌다(be left few in number=remnants).
2. 이사야
이제 우리는 유다 열왕 시대, 곧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시대에 활동하였던 이사야로부터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주전 8세기 선지자 이사야는 앞선 선지자 모세가 전망하였던(prospectively) 바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떠하였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이사야 10:21∼23, 개역개정) 이 말씀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으며(즉 불순종 이후 저주와 심판으로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와 로마에게 넘겨진 것을 고려하라) 그리고 잔존한 자(remnants)만이 어떻게 될 것인지(구원의 가능성)를 알려주고 있다. 아브라함 이후로 그렇게 뚜렷하게 점진적으로 확장-팽창하였던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이란 표현은 쇠퇴하고 소멸하여 간신히 명맥(목숨과 맥박)만을 유지하는 소수의 남은 자(잔존한 자)로 추락한 모습을 보게 된다.
3. 바울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에게서 이 표현이 어떻게 소개되는지 살필 수 있다. 바울의 관점이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약 2천년의 시간이 흐름으로써(아브라함-다윗-그리스도, 마 1:1), 지금까지 육적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림자로써만(제사, 절기, 의식, 절차: 짐승 피, 부정함을 물로 씻는 정결예식…) 베풀어져왔던 은혜의 수단이 폐하여졌고 무용하게 되었다는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골 2:17, 그림자와 실체를 비교하라, a shadow-the reality). 쉽게 말해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실체(하늘/하나님의 신령한 실체)가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동안 은혜의 수단과 방편이었던 육적 형식(옛적 이스라엘)을 벗어버리게 되었다(참 이스라엘, 요 1:47, 롬 9:6∼13, 히 1:1∼2을 참고하라). 그러므로 땅에서는 죄인도 완전한 죄 사함(구속)의 은혜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법)을 사람의 마음 판에 새길 수 있는 새로운 시대(성령 세례)가 시작되었다(렘 31:33∼34).
바울은 로마서 9:27∼28에서 이사야 10:22∼23(칠십인역)을 인용한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지라도”(=강한 암시는 그 대부분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와 엄중한 심판으로 멸망되었고) “남은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단지 극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 “이는 주께서 땅에 대하여 내리신 단호하고 최종적인 결정이라.” 모세의 예언대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은 불순종과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멸망했다. 그들은 벌거벗겨짐(포로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고귀한 지위도 박탈되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남을 당할 뿐만 아니라 열국들 가운데 흩어졌다. 특히 이는 아브라함이 갈대아인/이방 가운데서 구별되어 고귀한 존재로 가나안으로 들어온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의미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영적 품질(quality)이 이방인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4. 결론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이 열국 가운데 흩어져 이방인과 똑같이 되었음에도(신분과 지위의 박탈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반드시 이루실 것을 알린다. 바울은 롬 9:26에서 호세아를 인용한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포로의 땅)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호 1:10) 열국 가운데 흩어져 이방인과 다름없게 되었던 바로 그 이방 땅에서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긍휼(compassion)과 사랑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호 11:8∼9). 쉽게 말해서 사람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바랄 수 있는 긍휼과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놀랍고 은혜로운 구원의 은혜가 죄와 심판으로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남은 자의 구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가적으로 알려준다. 이스라엘 중에서 그 일부가 이런 은혜를 입을 것이지만 동시에 그 외에 대부분은 이 구원에서 제외될 것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육적 혈통에 근거해서는 구원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심판을 경험하는 중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은혜는 육적 혈통을 따라 이스라엘에게 속한 자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보장 받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서 오직 ‘남은 자’만 누리게 될 것이다(사 10:22∼23). 이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최종적인 결정이며 확정되어서 변개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도장을 찍고 있다.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더라. 그들은 혈통으로도 육정으로도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그 긍휼하심과 진실하신 사랑으로부터) 출생하였습니다.”(요 1:12∼13)
* 2022년 10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7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